지난 몇 년 간 넷플릭스라는 플랫폼 안에 누적되어 온 여성 서사의 시트콤, 드라마 시리즈를 내가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보는 경험은, 더더욱 TV를 켜지 않게 만들었다. 한국 방송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은 정말 단 한순간도 없었다. 

지금 한국 방송의 젠더 감수성은 어떤가? 실제 범죄로 처벌받았거나 범죄 혐의가 있었던 출연자가 있는 프로그램을 제외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몇 개나 될까? 2019년 초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벌어진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일 빅뱅의 승리를 둘러싼 문제들을 생각해보자. 탑 아이돌이면서도 속물 사업가이기를 자처한 승리의 캐릭터와 서사를 기꺼이 끌어안고 예능적 재미 안으로 포섭해 온 한국 예능 프로그램들이 이 범죄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한국 방송은 화면 안팎 모두에서 안전하지 않은 수준을 넘어 위험하고 상당히 많은 경우에 유해하다. 

여성 서사의 필요성에 대한 지속적인 요구가 존재하고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계속해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여성 관련 콘텐츠는 어디로 갈까? 그 콘텐츠를 볼 사람이 있는 곳, 다양한 여성 서사의 작품을 만나는 일을 이미 경험해본 시청자가 있는 플랫폼을 향할 것이다. 세상에! 여성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보고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 또 다른 여성의 이야기가 또 만들어지고 그걸 또 볼 수 있다니! 정말 넷플릭스가 숫자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한다면, 어쩌면 이 플랫폼을 통해, 여성들은 숫자로 원하는 것을 쟁취해내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TV를 켜지 않는다: 넷플릭스와 여성' 중 발췌, 글 윤이나

우리는 매일 엔터테인먼트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드라마와 예능, 영화, 음악, 웹툰, 유튜브까지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은 점점 더 넓어지는 중이고, 이 모든 것을 보지 않고 듣지 않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엔터테인먼트가 우리들의 삶에 끼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나아지고 있는 걸까요? 

아무리 많은 여성들이 지적해도 여성혐오가 담긴 장면은 매일 반복되고, 여전히 대다수의 여성 엔터테이너와 크리에이터들은 충분히 주목받지 못하거나 저평가 됩니다. 남성 중심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문제가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는 지금, 여성의 눈으로 엔터테인먼트의 현재를 바라보는 일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헤이메이트]의 두 번째 포켓북 <여자들은 먼저 미래로 간다>는 앞으로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더 많이 필요한 여성의 자리에 관해 이야기하고, 여성 서사에 대해 고민해보는 책입니다. 특집에서는 셀럽 맷과 [헤이메이트]가 함께 진행 중인 네이버 오디오클립 <시스터후드>에서 꼽은 여성 서사 작품들을 통해 여성 중심의 작품을 잇는 지도를 그려봅니다. 여성 서사에 대해 새롭게 고민하고 제대로 보기를 원하는 분들을 위한 가볍고 든든한 안내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엔터테인먼트에 필요한 것은 여성에 더 집중해서 말하는 일이며, 이것이 엔터테인먼트를, 더 나아가 여성의 삶을 좀 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고 [헤이메이트]는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여성의 이야기와 더 많은 여성의 시선이 필요합니다.  


[목차] 
프롤로그 
제대로 보고 싶은 당신을 위해 / 황효진

FEATURE
여성의 시선으로 진단한 2019년 현재의 영화, 케이팝, 넷플릭스, 드라마, 예능

남자들은 안 바뀌어도 우리는 바뀌겠죠: 영화와 여성 
여성을 위한 K-POP은 없다: 케이팝과 여성
나는 이제 TV를 켜지 않는다: 넷플릭스와 여성
<SKY 캐슬>이 끝난 뒤에 남은 것: 드라마와 여성
큰 판은 여자가: 예능과 여성 

ESSAY 
세 여성 필자가 이야기하는 자신이 사랑하는 작품과 여성 캐릭터

웃기는 여자는 힘이 세다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 / 영화감독 윤가은 
강하고 품위 있는 <글로리아> / 영화 저널리스트 이지혜
단단한 미소의 세계 <소공녀> / 일러스트레이터 심하림

PEOPLE 
지금 여기서 이야기해야 할 여성 엔터테이너4

욕망하는 여성의 얼굴, 염정아 
박나래의 극한직업
한지민의 선택
캡틴, 브리 라슨

SPECIAL SISTERHOOD 
네이버 오디오클립 <시스터후드>를 함께 들으며 읽을 때 더욱 좋은 여성 서사 지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캡틴 마블>
여성은 여성을 돕는다 <빅 리틀 라이즈>
너의 눈을 칼로 찌르는 꿈을 꿨어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이게 삶이야 <원데이 앳 어 타임>
성교육이 필요한 모두에게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21세기에 로맨틱 코미디를 만드는 법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산드라 블록과 함께라면 재앙도 두렵지 않아 <버드 박스>
할 말이 있는 당신을 위한 <거리의 만찬>
당신을 돌봐주러 왔어요 <툴리>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 우리들 <어느날 인생이 엉켰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유전>
춥고 지독한 서울에서 나로 살기 <소공녀>
엄마, 날 좋아하긴 해? <레이디 버드>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레슬링 <당갈>
아이와 어른 모두를 믿는 이야기의 힘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에필로그 
여자들은 먼저 미래로 간다 / 윤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