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여성의 눈으로 본다고 할 때, 각자 그 ‘기준’을 어떻게 세워두고 있나?
윤이나 / 예전에는 나에게 ‘여성 서사’라는 것이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는 않았다. 비평하는 사람으로서, 또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강박적으로 작품의 만듦새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운동장 자체가 기울어져 있다면 단순히 작품을 잘 만들었는가 아닌가는 너무 일차원적인 기준이다. 콘텐츠의 만듦새는 어느 정도 돈 문제와도 관련돼 있는데, 지금은 여성들에게 돈이 적게 돌아가는 상황이지 않나. 그런 상황에서 무언가를 잘 만든다는 것은 기적이고, 그렇다면 ‘잘 만든 작품만 응원한다’라는 기준을 세우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을 이뤄낸 여성들만 응원하겠다는 격이 된다. 그래서 지금은 ‘저 작품에서 여성을 어떻게 쓰고 있지?’ ‘여성이 어떤 역할을 하지?’ ‘저 여성이 인간으로 등장하나?’ 같은 부분을 생각하게 됐다.
황효진 / ‘여성 서사’라는 라벨링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여성이 의미 있는 인물로 등장하는 이야기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여성 서사’라는 라벨링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은데, 최종적으로는 이런 분류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2018년 말부터 2019년 초까지 방영한 드라마 JTBC <SKY 캐슬>은 중년 여성 배우들을 대거 기용하고 내용 면에서도 중년 여성들의 욕망을 중심으로 삼았지만, 여성 혐오적인 작품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보면 안 된다거나 여기에 관해 이야기해서도 안된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여성 배우들이 연기로서 어떤 일을 해내는지, 이 작품이 여성주의적으로 어떻게 아쉬운지 이야기해야 보는 사람들도, 산업도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SKY 캐슬>의 여성 배우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여성들도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될 거고. 결국 ‘여성서사인가 아닌가’를 감별하는 것 자체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본다.
- '더 제대로 보기 위한 질문들' 대담 중 일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