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두 사람 사이에 놓인 50년,
그 좁혀지지 않는 시간을 조급해하며 쓴 《나의 두 사람》

2018년 4월에 출간된 김달님 작가의 《나의 두 사람》은 조손가정의 당사자가 쓴 에세이라는 점에서 희소했지만 독자들이 이 책에서 발견한 것은 자신들의 ‘나의 두 사람’이었다. 사회 경제 문화적 개념을 걷어내고 나의 존재 이유로서 가족을 들여다보는 일이, 그렇게 조금 다른 환경에서 자란 서른 살의 젊은 작가에게서 가능했다.

50년 어린 자식이기에 더 가깝고 더 아프게 다가오는
《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

이번 책에서 김달님 작가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위치에 놓여 있다. 누구나 언젠가는 부모의 늙음과 죽음을 맞게 된다. 다른 게 있다면 김달님 작가는 50년 어린 자식이고,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는 일과는 거리가 먼, 서른 언저리의 삶을 사는 중이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작가의 이야기는 더 가깝고 더 아프게 다가온다. 독자들을 울게 했던 그 문장들은 곧 우리에게도 당도할 일인 것처럼 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요양병원에 입원하던 날. 작가는 생애 처음으로 보호자가 되어 주치의 앞에 앉는다. 정확하게 답할 수 없는 질문들,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들,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들을 흘려보내며 그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내가 할머니 할아버지에 관해서 안다고 생각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15페이지) 어떤 자식도 늙은 부모의 보호자로 사는 시간을 미리 겪을 수 없다. 모두가 그런 시간은 준비 없이 처음 맞는다. 그러므로 이 책에는 자주 좌절하고 가끔 안도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던 어느 젊은 자식의 기록이 담겨 있다.

(132페이지) “네가 다녀가면 하루 종일 외롭지 않아.” 나는 그 말이 외롭고 무서웠다. 할머니가 하루 종일 나만 기다리고 있다는 게. 할머니가 의지하는 사람이 고작 나라는 게.

아이에서 어른으로, 그리고 보호자로……
언젠가 우리의 보호자였던 그들이 늙고 병들 때,
우리는 어떤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아이였을 때 우리는 누군가의 보살핌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존재였다. 먹고, 말하고, 걷고…… 우리의 처음들엔 우리의 보호자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어른이 되어 집을 떠나면서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줄어든다. 어느 날 문득 그들은 늙고 병들어 있고, 우리는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 그들은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어, 같은 시간 속에 머문다. 김달님 작가는 우는 할아버지의 등을 어루만지고, 할머니에게 밥을 떠먹여 주고, 할아버지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사다 주고, 할머니의 기저귀를 갈아 준다. 모두 아이였을 때 그들이 해 주었던 것들. 아이에서 어른으로, 그리고 보호자로. 누구에게나 자기 차례가 온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어떤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121페이지) 늙어 가는 부모를 바라볼 때 문득 아이일 때의 나를 돌아보는 순간이 온다. 그 시간 속 우리는 제 곁을 지나가는 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줄 모르고 말갛고 어린 얼굴을 한 채 젊은 부모와 함께 있다.

사랑받은 기억이 사랑하는 힘이 되는 시간들

《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의 장소는 경주 집, 경주 종합병원, 창원 요양병원과 대학병원, 그리고 요양원으로 바뀌어 나간다. 무엇이 최선인지 알지 못한 채로 정신없이 최선을 다해 내는 나날들. 작가의 말처럼 “어쩌면 우리는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우리를 허락해 줄 뿐”인지도 모른다(64페이지). 이는 머리가 아니라 오직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를 읽느라,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을 가늠해 보느라 또 한 번 울게 되겠지만, 울고 난 다음에야 스스로를 믿어 보게 된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외롭게 하지 않고도, 뒤늦게 후회하지 않고도 작별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시간이 흘러 언젠가 당신 차례가 오면 사랑받은 기억으로 사랑할 힘을 낼 수 있기를.

(253페이지) 우리가 한여름에 있다고 생각할 때 여름은 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고 있는 중임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