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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살아가기 위해 고통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

의존증 최고 권위자 정신과 전문의의 25년 임상 기록
‘사람에게 의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의료는, 사회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기노쿠니야 인문대상 2022 인문서 베스트 4
★ 제70회 일본 에세이스트 클럽상 수상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고통』은 약물 의존증 최고 권위자인 일본의 정신과 전문의 마쓰모토 도시히코가 쓴 에세이다. 처음 약물 의존증과 마주한 중학생 시절부터 아웃사이더 의대생을 거쳐, 본의 아니게 의존증 전문병원에 발령받으며 시작한 약물 의존증 임상과 소년교정, 법정신의학, 자살 예방 연구 등 의사로서 25년간 경험한 일을 담았다.
저자는 약물 의존증은 범죄가 아닌 병이며, 약물 의존증 환자는 ‘사람에게 의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처벌이 아니라 치료와 연결을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모르던 신출내기 시절 환자에게 혼이 났던 일, 의사로서 미숙해 환자를 돕지 못하고 잃었던 일, 의존증 환자를 도우면서 스스로도 힘든 일상을 이겨내기 위해 게임에 의존했던 일 등 저자가 들려주는 소탈하고 진솔한 이야기가 감동을 전하는 동시에 의존증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뒤집는다.
일본에서 출간 즉시 화제를 모으며 제70회 일본 에세이스트 클럽상을 수상하고 ‘기노쿠니야 인문대상 2022 인문서 베스트 4’에 선정되었다.

약물 의존증은 범죄가 아니라 질병
살아남기 위해 고통을 필요로 하는 이들

“안 돼, 절대로.”
일본의 학교에서 시행하는 약물 남용 방지 교육의 표어다. 약물에 한 번 손을 대면 인생이 파멸되며 약물 남용자는 ‘괴물’, ‘인간이길 포기한 사람’이라고 가르친다. 약물 의존증 환자가 재활을 위해 오가는 시설 부근에는 마을 전체에 재활시설을 반대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다. 약물 문제를 일으킨 연예인은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호해주지 않는다. 약물 의존증을 대하는 이런 분위기는 우리 사회 역시 비슷하다.
저자는 그러나 이런 교육이 현실과 다르며 약물 의존증에 대한 편견을 조장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약물 의존증을 배척하는 사회 분위기는 당사자를 고립시켜 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다. 약물 의존은 범죄가 아니라 질병이고, 약물 의존증 환자에게는 엄벌이 아니라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적절한 치료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오랜 임상을 바탕으로 약물 의존증, 자해, 섭식 장애 등 병리적 문제를 겪는 환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심각한 트라우마와 고립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가혹한 성장 환경, 가정과 학교에서 당한 차별과 폭력, 성폭력 등 지우고 싶은 기억을 가진 이들이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하고 홀로 고통을 감내하다 약물에 의지하고, 폭식을 하고, 몸에 상처를 낸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어떻게든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건강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저자는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병적인 상태로 몰아가는 이러한 현상이 소수의 아픈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 자신도 대학 시절 학업에 열중하기 위해 카페인 약물에 의존했고 지난한 의존증 치료의 무력감을 견디기 위해 병적으로 게임에 몰두했다고 고백한다. 많은 사람들이 쓸모없는 취미에 집착하고 지나치게 매운 음식을 먹는 것 역시 힘든 일상을 버티기 위해 ‘건강하지 않은’ 일을 하며 균형을 맞추는 행위라고 저자는 말한다.

중학생 시절 폭력서클과의 만남부터
약물 의존증 최고 권위자가 된 현재까지

책을 시작하며 저자는 폭력서클이 지배한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자신의 의존증 임상이 운명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회고한다. 학생과 교사의 폭력이 충돌하던 학교에서 저자는 학생회 임원으로서 시너와 담배에 빠진 폭력서클 학생들을 회유하는 역할을 했던 것. 각별한 사이였지만 끝내 시너를 끊지 못했던 친구는 저자의 의사 생활 내내 환영처럼 따라다니고, 저자는 젊은 의존증 환자와 ‘불량 청소년’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된다.
약물 의존증뿐 아니라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해리성 정체장애, 자해, 자살 등 자신이 25년간 의사 생활을 하며 만난 잊을 수 없는 환자들과의 일화도 등장한다. 가족을 부양하며 과한 노동을 해내기 위해 불법약물을 사용하는 환자, 인간 사회의 불빛을 바라보며 다리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스스로에게 세균을 주사하는 환자 등 의학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전형적이지 않은 환자들을 겪으며 저자는 정신의학계가 오랫동안 답습해온 치료법에서 벗어나 환자 개인의 삶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의존증 분야의 최고 권위자가 된 지금도 스스로를 ‘환자를 돕는 사람’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자신은 줄곧 의존증에 대한 편견에 도전하며 이 사회와 싸워왔다고 말한다.

힘들게 하는 사람은 힘들어하는 사람일지 모른다
의존증의 반대말은 맨정신이 아니라 ‘연결’

약물 의존증 치료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어 당황하던 저자는 약물 의존증 환자들의 자조 모임과 만나며 전환점을 맞이한다. 병원에서까지 약물을 사용하여 출입 금지를 당했던 환자가 모임에서는 다른 환자들과 교류하며 몇 달 동안 약물을 끊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그 일을 계기로 ‘사람에게 의존하지 못하는 사람’인 의존증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기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의존증 당사자에게서 의존증에 대해 배우자고 마음먹는다.
저자는 소년교정시설에서도 비슷한 일을 경험한다. 촉탁의로 진료하며 만난 ‘불량 청소년’들은 폭주족 리더, 방화범, 성추행범, 공갈 협박범 등 범죄자였지만,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저자는 그들 또한 가정과 학교에서 가혹한 폭력의 희생자였다는 걸 알게 된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던 아이들은 저자의 별것 아닌 호응과 공감에도 마음을 열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그 아이들 역시 사람과 연결되지 못한 탓에 나아갈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저자는 흔히 사회를 어지럽히고 불편하게 한다고 손가락질당하는 사람이 실은 가장 괴로워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힘들게 하는 사람은 힘들어하는 사람일지 모른다”고. 일부 사람들이 공동체의 규범을 경시하고 일탈하는 이유는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문제를 저지르는 사람을 무조건 단죄해 범죄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가 떠안고 있는 고통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엄벌주의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도 신선한 충격을 줄 것이다.
저자는 “의존증의 반대말은 ‘맨정신’이 아니라 연결”이라는 작가 요한 하리의 말을 인용하며 의존증 환자가 고립되지 않고 다른 사람과 연결되도록 의료뿐 아니라 사회가 함께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일본에서 출간 즉시 화제를 모으며 제70회 일본 에세이스트 클럽상을 수상하고 ‘기노쿠니야 인문대상 2022 인문서 베스트 4’에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