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이름 바깥의 멜로디 같은
우리들의 이야기

만화가 루나파크, 카피라이터, 시인 등 다방면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홍인혜의 첫 시집 『우리의 노래는 이미』가 27번째 아침달 시집으로 출간됐다. 2018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4년만이다. 홍인혜의 시는 누락된 괴짜 같은 이들을 내세워 어두운 도시의 풍경을 그린다. 저마다의 사연과 슬픔을 안고 있는 이 등장인물들은 한데 모여 서로를 위로하는 노래가 된다. 홍인혜의 시는 오늘이라는 소설의 한 페이지를 건너, 다시 범람하는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잠자리로 드는 충혈된 도시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자장가다.

충혈된 도시의 사람들

모두가 춘다 음악이 들리면 추고 귀신이 들리면 추고 너나없이 삶이 들려 추고 삶이 떠나도 추던 가락으로 추고
―「춤」 부분

홍인혜의 시에는 노래와 춤이 가득하다. 그런데 그 노래는 조금은 어둡고 쓸쓸한 멜로디를 띠고 있으며, 그 춤은 괴짜들이 펼치는 몸부림에 가깝다. 어딘지 기묘해 보이는 그러한 노래와 춤에는 처량한 한편 나름의 최선을 담고 있는 듯해, 보는 이의 마음 한구석을 찡하게 만드는 데가 있다. 홍인혜가 그리는 시의 풍경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왜 이곳에 왔는지 묻지 않지만 부은 발목과 젖은 머리칼에서, 화약 냄새와 불탄 소맷단에서 서로의 이력을 더듬는 나라 묠란드 손마디 굵은 사람들이 오렌지나무 아래 기타를 치고 선율과 함께 손금이 풀려나간다 둥치마다 밤이 기웃거린다 매달렸던 사람들 모두 내려와 춤추고 음표마다 사라지는 멍 자국들
―「묠란드」 부분

묠란드라는 상상의 나라다. 그곳의 풍경은 아주 평온해 보인다. 고양이들은 지붕에 배를 내놓은 채로 졸고 있고, 아이들은 마음껏 뛰노느라 더러워졌고, 노인들은 부끄럼 없이 더디게 산다. “화약 냄새와 불탄 소맷단에서 서로의 이력을 더듬는 나라”라고 한 데서 유추할 수 있듯이, 묠란드는 전쟁 또는 그와 같은 지난한 경험으로부터 상처를 입고 탈출한 이들의 망명지이다. 그들은 묠란드에서 노래를 듣고 춤을 추며 지난 상처들을 치유받는다.
그들은 묠란드에서 더 이상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따뜻하고 너그러운 풍경에서 느껴지는 으스스한 느낌은 무엇일까? 어떻게 그들이 전쟁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묠란드로 망명하는 일이 가능했는지가 영 마음에 걸린다. 시의 결구는 단서 하나를 준다. “신발 끈은 헐겁고 사람들은 너그러워 마치 한 번쯤 죽어본 것처럼”. 마지막 진술로 인해 묠란드는 비현실적인 환상의 공간을 넘어서 상처를 입고 죽은 이들이 모인 천국의 이미지를 덧입는다. 따스하지만 오소소하고 다정하지만 서늘한, 이상한 형용이 가능해지는 세계를 홍인혜는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다정한 피가 너를 한 바퀴 돌아 나를 이어 달리곤 했다

팔이 발생하자 서로를 안았다 최초의 포옹은 타인을 안는 동시에 자신을 안는 것이었다
―「빙하기」 부분

홍인혜의 시에는 “다정한 피”가 돌고 있다. 홍인혜는 ‘오늘’이라는 이름의 소설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시선을 준다. 그런데 이들이 등장하는 소설은 밝고 희망찬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이들이 등장하는 소설은 “문법에서 탈주”한 소설이며, 소설 속 인물들은 “플롯에서 낙오한” 사람들들이다. 쏟아지는 눈 풍경 속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이야기는 “투명한 파국”을 향해간다.
홍인혜가 보여주는 다정함은 동정에서 오는 시혜가 아니다. “팔이 발생하자 서로를 안았다 최초의 포옹은 타인을 안는 동시에 자신을 안는 것이었다”라고 써두었듯이, 그 다정함은 같은 처지에 놓인 동족을 바라보는 데서 온다. 따라서 홍인혜는 그렇게 발생되는 다정함을 연민의 어조로 말하지도 않는다. 그의 힘은 어두운 것을 어두운 것 자체로 보는 데에서 온다. 따라서 홍인혜에게 있어 대상의 슬픔을 바라보는 일은 나의 슬픔을 바라보는 일이 되며, 대상의 어두움을 바라보는 일 또한 나의 어두움을 바라보는 일이 된다. 대상을 향하는 다정하면서도 서늘한 시선을 통한 복잡한 양가감정은 그의 시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효나와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렸다 효나와 나는 크게 다퉜다 너 진짜 재수 없다, 그래? 우리 다신 보지 말자(…)

동창들은 매년 같은 날 모인다 해가 갈수록 효나가 아닌 아파트와 주식을 기린다 효나는 언제나 작년이지만 우리는 내일 아마 살아 있을 테니까

새해를 맞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사람들은 샴페인처럼 바글거린다 이제 효나의 두 배를 산 나는 고백한다 있잖아 효나야

근데 그때 너도 잘못했어
―「미래의 효나」 부분

이 시는 효나의 기일이 배경이다. 효나는 죽은 지 한참되었고, 동창들은 죽은 친구를 기리기 위해 그날에 모이지만 더 이상 효나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아파트와 주식 등의 돈 이야기만 한다. 그 무리 속에서 여전히 효나를 생각하는 것은 효나와 크게 다투고 절교를 선언했던 화자다. 화자는 효나가 교통사고로 죽은 뒤 연관성 없는 죄책감에 시달렸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효나를 고인이라는 이유로 미화하고 용서하지는 않는다.
화자는 효나를 여전히 미워하고 있는 것일까? 그보다는 좀 더 복잡하다. 화자는 효나가 귀신이 되어 자신에게 붙으면 어떡하나, 두려워하면서도 평생 “네가 나를 계속 무섭게 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효나를 기리고 그리워하는 그만의 방식인 것이다. 아파트와 주식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 무리에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지 못하는, 플롯에서 낙오한 듯한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복잡한 다정.
홍인혜의 시에는 지나간 좋았던 시간에 대한 추억과 사라진 것들에 대한 쓸쓸함, 그리고 해가 저물어 다가오는 어둠에 대한 인식이 얽혀 있다. 때문에 홍인혜가 그려내는 도시의 풍경은 밤이 깊어도 꺼질 줄 모르는, “충혈된 도시”이며 그 속에서 “조용히 허물어”지는 사람들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이야기이기에, 홍인혜는 “침대 밑에 도사린 검은 악어를” 잠재우듯이, 기도와도 같은 마음을 담아 “미미레레” 하고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노래를 부른다. 신에게 바치는 찬송가(미제레레, ‘불쌍히 여기소서’)와는 달리 내 방에 미미하게 울릴 뿐인 자장가를. 그러나 그 노래는 “계이름 바깥의 멜로디” 같은 사람들에게 “라디오가 감지한 비밀 주파수”를 통해 퍼져 나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