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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데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운데 힘든
이 일에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육아와 함께하는 ‘성장’의 순간들

에세이 『아무튼, 하루키』 『읽는 사이』의 저자이자 사노 요코와 고레에다 히로카즈, 미야모토 테루 등 다양한 일본 예술가의 책을 번역한 이지수 작가의 신작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이번 책은,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의 생생한 변화를 보여준다. 특히 그만의 유쾌한 언어로 엮어낸 일상 속에는 무수히 많은 책을 번역한 저자의 포착이 두드러진다. 이지수 작가는 육아를 가리켜 “힘든데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운데 힘든” 일이라고 표현한다. 잠투정 끝에 겨우 꿈나라로 간 아이의 규칙적인 숨소리, 정성스레 밥을 차려도 “안 먹어!” 하는 바로 그 아이가 서툰 발음으로 “샹해(사랑해)”라고 말하는 장면들에서 그가 말한 아이러니를, “육아에 얽힌 온갖 노동 사이사이에서 불현듯 튀어나오는 사랑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다.
책의 제목 또한 그러한 역설적 의미를 담고 있다. 장난을 치는 엄마에게 아이는 “엄마가 놀리니까 마음이 올록볼록해져요”라고 대답한다. 무궁무진한 아이의 언어에서 빌려 온 표현은 아이와 엄마의 다름을 보여주는 동시에 매 순간이 매끄러울 수는 없는, 그러나 그 덕분에 더욱 빛나는 ‘성장’의 여정을 나타낸다.

“유하를 통해 내 좁은 세계가
조금씩 넓어져가는 것을 느낀다”
작은 인간이 만들어낸 더 큰 세상 속으로

성장의 순간들은 책의 곳곳에 녹아 있는데, 그에 뒤따르는 실패와 좌절 또한 그러하다. 저자는 난임 치료와 이후 임신에 성공하기까지의 경험담을 진솔하게 풀어놓으며, 분투 속 가감 없이 드러나는 희로애락을 전달한다. 또한 산통을 가리켜 “자궁 속에 갇힌 괴수가 자궁을 찢으려고 뿔 달린 머리로 들이받으며 발작하는 동시에 거인이 내 골반뼈를 망치로 때려 부수는 느낌”이라고 묘사한 부분에서는 저자가 느낀 고통의 실감이 생생히 전해진다. 이어지는 아이와 엄마의 첫 순간들은 말 그대로 ‘세상에 없던’ 사람을 만난 엄마와, 그런 엄마를 포함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처음인 아이가 함께 자라나는 방식을 보여준다. 아이와 엄마는 사랑을 주고받으며, 상처 입고 또 용서를 구하며 서로의 세계를 넓혀간다.

유하는 내가 자신을 껴안는 방식으로 내 어깨에 코를 파묻고 얼굴을 비빈다. 남편이 불러주는 자장가의 가사를 전부 외워서 따라 부른다. 우리가 유하한테 보여주고 알려준 것, 무심코 했던 행동들과 일상적으로 하는 말들이 유하 안에 고였다가 유하의 것이 되어 다시 나온다. 함께 보낸 시간이 남긴 투명한 인장. 남편과 나의 눈에만 보이는, 유하를 나날이 사랑하게 만드는 나이테들.
―152~153쪽

나아가 아이와의 삶은 저자에게 이제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노력을 불러일으킨다. 저자는 “내향인의 빈약한 사교성 주머니를 최대한 쥐어짜며” 아이 친구들의 엄마들에게 다가가 코로나19로 인해 어린이집이 폐쇄되는 동안 공동 육아를 하자고 제안하고, 아이 친구의 집에 놀러 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같이 어울린다. 저자는 그와 아이를 둘러싼 사회문제에도 주의를 기울이는데, 어째서 남자 화장실에는 기저귀 교환대가 없는지, 청결하고 안전한 수유실이 있는 회사가 얼마나 드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노 키즈 존’에 대한 고뇌와 함께 의견을 적어 내려간 글에서는 우리에게 일상에서 일어나는 차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던져준다.
‘일과 육아의 병행’에 대한 고민도 빼놓을 수 없다. 실패를 거듭하며, 한편으로는 일에 쫓기고 다른 한편으로는 육아와 가사에 쫓기는 가운데 아직 명확한 답을 알아내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저자는, 그저 불안과 초조 속에서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보기로 한다. 모든 걸 해내는 멋진 모습보다도 그 모습에 가려진 눈물과 노력, 서투름을 더 귀중히 여기면서.

그러므로 나는 지금 이 글을 다소 급하게 마무리 짓고, 건조기 속의 빨래를 방치해둔 채 유하를 데리러 갈 것이다. 어린이집 현관에서 나온 유하가 주차장으로 순순히 가지 않고 반대편 공원으로 뛰어가도 느긋한 마음으로 뒤따라갈 것이다. 유하의 등을 바라보며 걷는 길에, 우리가 함께 맞이하는 다섯 번째 초여름에, 내가 포기한 가능성들과는 다른 형태의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고 믿어볼 것이다.
―187쪽

이제까지는 없던 언어로
또 다른 방식의 사랑을 배워가는 일

저자는 또한 육아에 대해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작은 인간을 이해해보려고 애쓰는 일”이자 “계산 없는 사랑을 퍼부어야 하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무엇보다 사랑이 가득하다. 엄마가 아이에게 주는 내리사랑만큼이나 큰, ‘손아랫사람이 손윗사람을 사랑함’이라는 의미의 치사랑은 이 책에서 돋보이는 점 중 하나다.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엄마를 찾아와 고르고 고른 도토리와 솔방울을 선물하고, 하나 남은 청포도를 먹지 않고 고이 보관하고 있다가 건네는 아이를 보고 저자는 “이 작은 몸에 어쩌면 이렇게 큰 사랑이 들어 있을까” 감탄한다. 저자는 아이가 있어 좋은 점 중 하나로 “인간이 어떻게 언어를 배워나가는지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을 꼽는데, 특히 이 사랑의 ‘언어’를 기록한 대목이 눈에 띈다. ‘연속적’이라는 말의 뜻을 묻는 아이에게 “끝없이 이어지는 거”라고 알려주자 아이는 “나는 엄마를 연속적으로 사랑해”라고 말한다. 어느 날 아침에는 일어나자마자 “엄마, 우리 서로 사랑하기로 약속하자”고 한다. 같이 소원을 빌 때 “난 엄마가 날 평생 사랑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말할 때마다 엄마가 웃는 거”라고 하는 아이를 보며 저자는 모든 사랑의 순간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더 많이 사랑했다가 상처받으면 어떡하지’ ‘나한테 질리면 어떡하지’와 같은 걱정이나 계산, 밀당 없이 앉으나 서나 찰싹 달라붙고, 부모가 눈에 안 보이면 큰 소리로 부르고, 떨어져 있기 싫다고 울고, 밥 먹다가 뜬금없이 팔을 꼭 껴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한다. 장난으로 죽은 척을 하면 3초 만에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외친다. “엄마, 다시는 그런 장난 하지 마!”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을 내가 만들어낸 기적.
―131쪽

『우리는 올록볼록해』에는 함께하는 시간이 쌓여 누군가를 더 세밀하게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와 그 속도에 발맞춰 따라가는 엄마가 만들어낸, 다채로운 성장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