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뜻밖에 좋은 책
당신을 살게 했던, 또 살게 하는 사랑은 무엇인가요?

" 나는 우리 삶에 생존만 있는 게 아니라 사치와 허영과 아룸다움이 깃드는 게 좋았다. 
때론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밟고 건너야만 하는 시절도 있는 법이니까"
김애란 , 『잊기 좋은 이름』 중에서

당신은 무엇에 기대어 힘든 시기를 건너가고 있나요?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가고 싶어서, 
좋아하는 작가의 다음 책을 읽고 싶어서, 
아주 사소하고 사적인 사랑 덕분에 우리는 힘을 내어 하루를 살고, 
그런 하루들이 모여 인생을 만들어 갑니다. 
한때 누군가의 팬이었던, 그리고 여전히 누군가의 팬인 당신에게 이 책들을 추천합니다.


아폴로를 처음 보고, 
아니, 처음 듣고 인생의 소명을 알아버렸다.
저 사람을 벅찬 마음으로 따라가기 위해 태어났다고. (30쪽)

“여기에 왔어. 2만 광년을, 너와 있기 위해 왔어.”
“네가 내 여행이잖아. 잊지 마.”

외로운 갈비뼈, 
그런 데를 짚어주는 지구에서 단 하나뿐일 러브 스토리!

1. 
창비장편소설상,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작가 정세랑의 두번째 장편소설로 외계인 경민과 지구인 한아의 아주 희귀한 종류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2012년 출간 후 아쉽게 절판되어 중고책이 고가에 거래될 정도로 애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은 이야기를 난다에서 개정판으로 재출간한다. 이야기 곳곳의 내용과 문장을 세심하게 다듬고 표지는 채지민 화가의 그림으로 새로운 옷을 입혔다. 활달하고 재치 있는 문체, 눈물이 왈칵 쏟아질 듯한 다정함이 특징인 정세랑 월드에 초대된 독자들은 무방비로 건네는 그의 진심에 속수무책으로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칫솔에 근사할 정도로 적당량의 치약을 묻혀 건네는 모습에 감동하는 한아는 저탄소생활을 몸소 실천하는 의류 리폼 디자이너다. 그녀는 ‘환생’이라는 작은 옷 수선집을 운영하며 누군가의 이야기와 시간이 담긴 옷에 작은 새로움을 더해주곤 한다. 한아에게는 스무 살 때부터 좋아한, 만난 지 11년 된 남자친구 경민이 있다. 늘 익숙한 곳에 머무려 하는 한아와 달리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경민은 이번 여름에도 혼자 유성우를 보러 캐나다로 훌쩍 떠나버린다. 자신의 사정을 고려해주지 않는 경민이 늘 서운했지만 체념이라고 부르는 애정도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 한아. 때마침 캐나다에 운석이 떨어져 소동이 벌어졌다는 뉴스에 한아는 걱정이다. 경민은 무사히 돌아왔지만 어딘지 미묘하게 낯설어졌다. 팔에 있던 커다란 흉터가 사라졌는가 하면 그렇게나 싫어하던 가지무침도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아를 늘 기다리게 했던 그였는데 이제는 매순간 한아에게 집중하며 “조금 더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을 준다. 달라진 경민의 모습과 수상한 행동이 의심스러운 한아는 무언가가 잘못되어간다고 혼란에 빠지는데……

2.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확보하며 한국 문학의 영토를 유연하게 넓혀온 소설가 정세랑. 한번쯤 어디서 스쳐지나간 듯한 희미한 누군가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 삶에 작은 조명을 비춰주었던 그. 그런 그에게 독자들이 보내는 ‘믿고 읽는 작가’라는 찬사는, 소수자성에 대한 풍부한 성찰과 폭력에 대한 예민한 감각, 주류에서 배제되고 드러나지 않는 동시대의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그것을 작품 내부로 긴밀히 불러들이는 윤리에 대한 신뢰와 응원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정세랑은 ‘오늘의 한국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인아영)이 되었다. ‘자기보다 뒤에 올 여성 독자들을 보호해주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이야기한 바 있는 정세랑 작가는 맑은 얼굴을 한, ‘좋은 시민’일 수 있는 남성 인물을 작품 속에 구현해낸다. 작가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사랑하는 두 사람이 결합하는 형태의 최선이 아닌 듯하다고, 일부일처의 이성애적 결합을 넘어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관계로 의미를 확장해나가며 다른 선택지를 상상해볼 순 없는지 질문한다.
소설의 표지는 채지민 화가의 두 작품을 활용해 만들었다. 하나는 일반판, 하나는 동네서점에만 만날 수 있는 한정판 에디션이다. 애초에 두 그림을 콕콕 집어놓고 두 버전의 표지로 삼아야지 오래 준비를 해왔던 참이다. 소설을 읽고 나면 왜 이 둘의 저 모습일까 바로 아시게 될 듯도 하다. 일단은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니까. 사랑하는 이 둘이 마주보고 있을 때와 달리 이 둘이 한 방향을 향하고 있을 때의 유구함, 사실 사랑은 그와 같은 ‘의리’에 기댈 때 그때만이 ‘영원’이라는 이름을 온전히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나 싶어서다. 동네서점 에디션은 한정판으로 제작되어서 준비된 수량이 소진되면 더는 만질 수 없는 책이 된다.
그럼 이제, ‘여행’을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