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무엇을 하려는지 몰라도 괜찮다.
안무는 당신이 방법을 찾지 못할 때 하는 것이다.
하나의 안무, 혹은 공연을 창작하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로 나아가면 좋을까. 수없이 많은 가능성과 드넓은 선택의 벌판에서 길을 잃지 않을 방법은 무엇인가. 아마 책의 서두에서 저자가 건네는 말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나는 어떤 원칙, 내가 어떻게 시작할지 알려줄 원칙을 찾는 것으로 책을 쓰기 시작하려 한다. 이 책을 쓰는 원칙은 다음과 같다: 내가 하나의 춤을 안무하거나 공연을 만드는 방식으로 책을 쓴다. 이건 내게 효과가 있는데, 지금 당장의 주된 두려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다독여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채로 책을 쓰기 시작한 저자는 안무 주위를 맴도는 갖은 키워드들로 정교한 직조물을 짜 내려간다. 때로 저자는 재료, 독창성, 서사, 언어, 시간처럼 추상적인 층위를 탐색하고, 때로 저자는 리서치, 스타일, 협업, 기교처럼 실천적인 차원을 건드린다. 때로는 지원금 신청서, 리허설 스케줄, 커미션, 생계유지, 조명처럼 더 현실적인 부분을 언급하기도 한다. 때로는 질문을 던지고(‘재료’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우리는 무엇을 의미하고자 하는가?) 단언을 하고(안무는 당신의 몸이 사유하는 패턴과의 교섭이다.) 속내를 털어놓고(때로는 춤을 춰야 하는 어떠한 이유도 찾기 어렵다.) 숙제를 내주고(1분짜리 음악, 1분짜리 영상, 짧은 텍스트와 사진을 선택하라.) 경고하고(연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위안을 준다.(이것은 단지 바보 같은 춤일 뿐이다.)

늘 새롭게 갱신되는 한 편의 안무이자 퍼포먼스
한편 역자들이 밝히듯 이 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안무이자 하나의 퍼포먼스로 읽히기도 한다. 저자가 자유롭게 열어 둔 글의 형식과 구성, 문체에서는 시간과 공간, 호흡과 리듬, 유머와 같은 안무 요소들이 기대치 못한 순간 튀어 오른다.” 앞에 했던 말(대화는 협업하는 유일한 방법이다.)을 바로 몇 줄 아래에서 뒤집으며 정반대의 진실을 암시하고(너무 많이 이야기하지 마라.) 앞서 나왔던 문장을 반복하되 다른 의미로 반복하는 이 책은 다양한 창작 기법을 몸소 시연하는 작품으로 읽히기도 한다. 무엇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독자에 따라 그 의미가 새롭게 갱신되는 이 책은 “실로 다양한 분야 그리고 서로 다른 매체를 다루는 많은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는 책이다. 안무를 처음 시작하거나, 안무 작업을 지속해 오거나, 혹은 안무가 아니더라도 그와 유사한 행위를 하거나, 보고 있는, 혹은 예술과 아무 관계도 맺지 않은 이들에게까지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