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자 브라질인, 그리고 어머니인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삶, 글쓰기에 대한 사유, 독자와의 소통, 번역가로서의 변모, 또 그가 만난 인물들까지 ‘리스펙토르’라는 세계를 이루는 다양한 풍경이 이 책 『세상의 발견』에 담겨 있다.

1. 소설과 산문
『달걀과 닭』『G.H.에 따른 수난』『야생의 심장 가까이』『별의 시간』『아구아 비바』 등 그동안 출간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소설들은 무척 매력적이되, 뭐라 규정하기 어려운, 해독 불가능한 작품들로 기억돼 있다. 한없이 뜨겁고, “희게 번득이는 빛의 칼날”(배수아)로. 시인 김선오의 평처럼, “그의 소설들이 뜨거운 내장과 같다면 산문집 『세상의 발견』은 피부에 가까운 글들의 모음이라고 할 수 있다. 보다 표면인 것. 부드럽고 따뜻하고 익숙하지만 그 속에 뼈와 내장과 정신을 품고 있는 그런 것. 산문의 넓이를 누리며 멀리까지 뻗어나가는 일상적이고 경쾌한 문장들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라는 작가의 신비를 걷어내 폐기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걷힌 자리에서 새로운 형식의 신비를 발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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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1973년 브라질 일간지 〈조르나우 두 브라질〉에 토요일마다 발표되었던 글들이 주를 이루는, 1,032쪽에 달하는 이 산문집에는 단상, 일기, 회고록, 여행 노트, 인터뷰, 연재물, 에세이 등이 섞여 있다.
클라리시의 소설을 두고 버지니아 울프와 비슷하다고 했을 때 그가 보인 반응, 자신의 출생지와 가족관계에 대한 세간의 호기심에 대한 반응, 두 아들을 비롯해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가정부에 대한 이야기 등이 특유의 솔직하면서도 신랄한 어조로 드러나 있다.
또한 그의 작품에 중요한 오브제로 등장하는 닭, 장미, 표범 등에 대한 언급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이 책을 읽는 큰 재미 중 하나다. 부모가 조국인 우크라이나를 떠나 “미국이나 브라질”로 떠나는 길 위에서 잉태된 클라리시는 생후 2개월에 브라질에 이주한 후,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포르투갈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설명 ― 딱 한번만 하는 설명」).
클라리시는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사소한 장면이나 사물, 대화에서 글이 시작되더라도 기존의 감각이나 시각으로는 포착해내기 어려운 예리한 진실을 독자들 앞에 가져다 놓는다.

3. 자신의 소설에 대한 리스펙토르의 말
리스펙토르의 소설들이 신비하되, 대체로 이해 불가능했다는 고백들이 많은데, 이 책에는 클라리시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말한 글이 여럿 포함돼 있다. 『달걀과 닭』에 수록된 작품들 10여 편에 대한 글 「설명하지 않은 설명」, 아직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포위당한 도시』에 대한 글 「뒤늦은 편지」, 『G.H.에 따른 수난』에 대한 글 「늦은 번역」 등. 그중 「설명하지 않은 설명」에서 몇 문단을 옮겨본다.
“「어느 젊은 여인의 몽상과 취기」를 쓰면서는 분명 무척 즐거웠고 글을 쓰는 기쁨을 느꼈다. 작업하는 동안에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평소 나답지 않게 늘 기분이 좋았고 포르투갈어로 말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언어적 경험을 쌓았다. 나는 젊은 포르투갈 여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 좋았다.” “「가족의 유대」는 기억에 남는 게 아무것도 없다.” “「닭」은 30분도 안 되어서 완성했다. 원고 청탁을 받았고, 제대로 쓸 마음 없이 쓰기 시작했으며, 완성한 후에도 그 원고를 보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이야기가 매끄럽다는 것을 깨달았고, 얼마나 사랑으로 썼는지 느꼈다. 나는 내가 진짜 이야기를 썼단 걸 알게 되었고, 내가 동물들에게 늘 느꼈던 즐거움이 거기에 가득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저녁 식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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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클라리시는 세심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자라난 브라질 땅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존재에 대해 깊은 애정과 연민을 갖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사회문제에 분노하며 시위에 참여하였고, 언제나 투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설 독자들에겐 다소 의외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작품을 일종의 참여문학이라 여기기도 했다. 주목받지 못하는 친구의 아름다운 글을 자신의 글 안으로 초대하였고, 파블로 네루다와의 인터뷰를 앞두고 몹시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자신을 “배짱 좋은 소심한 사람”으로 묘사했다.
그는 현실의 깊이와 넓이를 통렬하게 감각하는 동시에, 한 명의 개인으로서 자신의 삶에 충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