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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그가 말했다. “오래전에, 내 안에 무언가 있었어. 그런데 이제 그것들은 사라졌지. 영원히 사라져 버렸어, 이젠 가 버렸어. 울 수가 없어. 아무렇지도 않아. 더 이상 그건 돌아오지 않아.”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일본어로 번역해 소개할 만큼 스콧 피츠제럴드에게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피츠제럴드는 한동안 나의 스승이자, 대학이자, 문학 동료였다.” 그래서였을까? 하루키의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은 주인공 와타나베가 비행기 좌석에 앉아 지금까지 살아오는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많은 것들을 회상하면서 시작한다. 잃어버린 시간, 죽거나 떠난 사람들, 돌이킬 수 없는 추억들… 이 모든 것은 피츠제럴드가 자신의 소설들을 통해 즐겨 다루었던 주제들이다. 

살면서 아무것도 잃지 않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서 결국은 누구나 젊음을 잃어가게 마련이다. 사랑, 건강, 가족, 부, 명예와 같은 가치들이 행복이나 성취감을 동반하며 삶에 머물렀다가 사라지곤 한다. 피츠제럴드는 일찌감치 인생의 이러한 속성을 간파하였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문장으로 표현해 낸 작가였다. 그가 써 내려간 수많은 단편 소설은 이러한 그의 세계관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본 단편집 『행복의 나락』에 수록된 다섯 작품들은 ‘퇴색되거나 잃어버린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삶의 표면을 멋지게 그린다는 편견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그가 삶의 표면을 눈부시게 그린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게 그의 전부는 아니다. 환상은 환멸과 샴쌍둥이이기 때문이다. 환상을 좇는 자는 반드시 환멸에 머리를 박게 되어있다. 피츠제럴드는 찬연하게 빛나는 삶의 표면 아래 처절한 환멸의 구렁텅이도 기가 막히도록 잘 그리고 있다. 
『행복의 나락』에 실린 단편들은 환상과 환멸이라는 샴쌍둥이를 잘 그리고 있다. 주로 아름다운 여인을 좇는 남자의 환상이지만, 아름다운 남성을 좇는 여자의 환상 (새로 돋은 잎) 역시 다루고 있다. 불과 세 시간에 걸친 환상과 환멸의 변주 (비행기 환승 세 시간 전에)가 있는가 하면, 수십 년에 걸쳐 환상이 환멸로 변하는 경험 (겨울 꿈과 오, 붉은 머리 마녀)도 실려 있다. 환상으로 시작해 환멸로 끝난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 삶에서 환상에 환멸이 따라오는 전개는 시간 순이지만, 우리 삶의 의미는 시간 순과 무관하지 않은가. 피츠제럴드는 환멸을 겪으면서도 환상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인물들을 창조해 내었고, 그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