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말들>로 돌아온 김겨울 작가가 사적인서점 독자분들을 위해 엄선한 세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3. 책과 세계
중요한 인문 고전들을 통해 책의 세계를 설명하는 책입니다. 
<책의 말들>에서 인용한 1번 문장이 이 책의 서문에서 나왔습니다. 
<책의 말들>을 쓰기 시작할 때, 무조건 1번 문장은 그 문장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으로 텍스트와 콘텍스트가 만나는 모습을 깊이 있게 조망하실 수 있습니다.
책과 세계 또는 텍스트와 컨텍스트

책이라는 텍스트는 본래 세계라는 맥락에서 생겨났다. 인류가 남긴 고전의 중요성은 바로 우리가 가볼 수 없는 세계를 글자라는 매개를 통해서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해준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역사라는 시간과 지상이라고 하는 공간 속에 나타났던 텍스트를 통해 고전에 담겨진 사회와 사상을 드러내려는 시도를 한다.

책에 담겨진 세상
저자는 먼저 다섯 가지 테마별로 15권의 중요한 고전들을 살펴본다. ‘세계의 근본문제’라는 주제에서는 길가메시 서사시와 모세5경, 사자의 서가 다루어진다. ‘인간과 사회’에서는 일리아스와 그리스의 비극들, 플라톤의 국가론이 나오고, ‘물음이 없는 단순한 세상’에서는 갈리아 전기와 키케로의 우정론, ‘지상과 천국, 두 세계의 갈등’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설명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속세계의 폭력적 완결’이라는 이름으로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프랑스의 백과전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과 다윈의 종의 기원이 분석대상이 된다.
저자가 고전에서 어떻게 그 세계를 이끌어내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자.

ꡔ일리아스ꡕ가 묘사하는 트로이 전쟁은 사실 지중해를 중심으로 성립해 있던 두 개의 큰 세력인 미케네제국과 히타이트제국 사이에 오랫동안 벌어졌던 여러 싸움들을 집약해놓은 것이다. 기원전 14~13세기에 에게 해의 작은 섬들의 연방인 미케네제국과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히타이트제국은 모두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이들 제국은 이집트와는 달리 상업문명을 이룩했다. 이들이 상업문명을 구축한 것은 이들이 상업에 타고난 재주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이 사는 땅에 씨를 뿌리고 곡식을 경작해서는 먹고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장사에 나선 것이다. 장사는 더러 약탈을 수반한다. 두 개의 제국 모두 약탈을 겸하는 상업문명이라는 것, 두 제국 모두 전성기에 이르렀다는 것, 이것들로부터 필연적으로 전쟁이 도출되어 나온다.

또한 저자는 그리스 영웅들의 용맹함을 통해 그들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도출하기도 한다.

그들의 행위는 그리스적 세계관과 인생관의 집약이다. 그들은 선악이 아닌 명예와 불명예로 움직인다. 거기에는 사람의 강함과 약함, 아름다움과 추함, 정복과 굴종, 생과 사, 신의 총애와 저주 등이 어지럽게 대립하여 싸움을 벌인다. 그러니 이것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할 수가 없다. 동물적 환희가 일깨워지는 탓에 저절로 손을 꽉 움켜쥐게 된다. 이 야만의 세계는 우리에게 인간의 원초적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중략) 자신이 언젠가는 죽을 운명임을 아는 영웅은 더욱더 명예에 집착한다. 죽어야 하는 인간이 획득할 수 있는 불멸성은 명예뿐이기 때문이다.

매체, 또 다른 컨텍스트
그리고 저자는 텍스트를 담는 그릇인 매체의 변천과정과 그것이 역사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 예를 보도록 하자.

활판 인쇄술은 성서의 보급과 대중화를 통해 교회의 신앙 독점을 부수었고, 근대사회로의 문을 열어젖힌 프로테스탄트 집단을 만들어내었으며, 이를 통해 또 다른 대중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이 모든 것들이 현대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의 원천임은 분명한 사실이며, 그 저변에 놓인 것이 바로 활판 인쇄술이라고 하는 매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