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책 세계산문선’, 그 세번째 권 《가만히, 걷는다》
《천천히, 스미는》(영미 산문선), 《슬픈 인간》(일본 산문선) 에 이어 출간된 이 책 《가만히, 걷는다》에는 근현대 프랑스 작가 스물한 명의 산문 서른여섯 편이 실려 있다.

“이 책을 나는 호화로운 선물처럼 아껴가며 읽었다”
이 한 권의 책에는 대가들이 예민한 감각으로 일상에서 발굴해낸 “시간 밖에서 영원한 기쁨”의 순간들과 그들이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모두 담겨 있다. 작가가 되기 전, 여기에 실린 작가들은 나를 꿈을 꾸게도, 절망하게도 했다. 그런 이들의 글을 단 한 권의 책에 모아 읽는 호사를 누릴 날이 올 거라고는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던 까닭에 나는 이 산문선을 호화로운 선물처럼 아껴가며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고 난 후 나는 조금 더 순정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어졌다.
― 백수린(소설가)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
귀스타브 플로베르, 기 드 모파상, 드니 디드로, 로베르 데스노스, 마르그리트 뒤라스,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마르셀 프루스트, 샤를 보들레르, 스탕달, 알베르 카뮈, 알퐁스 도데, 알프레드 드 뮈세, 앙드레 지드, 앙투완 드 생텍쥐페리, 조르주 상드, 콜레트, 폴 발레리, 폴 베를렌, 폴 브루제, 프랑수아 르네 드 샤토브리앙, 프랑수아즈 사강

“다채롭게 ‘영혼의 관능’을 자극하는 이 책”은 ~
북풍이 부는 새벽 홀로 잠이 깨어 바깥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에 확장하는 사유로 화답하는 콜레트의 산문이 시작이다. 지병인 천식으로 빛과 향기에 민감해진 탓에 나중에는 코르크로 밀폐된 방에 살았던 프루스트는 처음 사랑하는 꽃을 만났던 유년의 기억을 반짝이는 빛과 아찔한 향기에 꿰어 불러온다. 열여섯 살의 사강은 부랑자와 나눈 짧은 우정을 여름의 열기와 빗소리 그리고 그를 만나러 달려갈 때 차오르던 숨에 기대어 세밀하게 옮긴다. 해질녘 돌 위에 가만히 앉아 나무와 별을 바라보고 버려진 길을 따라 산책하는 샤토브리앙은 사실 그 정지와 고요가 비밀한 고통에서 비롯되었다고 고백해오고, 사랑에 실패한 뮈세의 편지에서는 고독이 검은 돌기처럼 만져진다. 오로지 글을 쓰고 싶어 낯선 도시로 떠나온 가난한 청년 도데가 선명하게 전하는 배고픔과 추위도 있다.

책에 실린 스물한 명의 작가들은 이렇듯 다채롭게 ‘영혼의 관능’을 자극한다. 책장을 넘길수록 잊고 있던 감각이 불거지고 납작하던 마음은 입체적으로 변모한다. 삶의 이모저모가 보여주는 관능에 굼떠지는 때마다 나는 이 책을 유용한 연장처럼 꺼내 들 것이다.
― 한정원(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