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서점에서 『거짓의 조금』을 구매 시 타투 스티커를 함께 드립니다(~소진 시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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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살리는 일에 관한 고백,
그것을 위한 거짓의 조금

『연애의 책』『식물원』『작가의 탄생』 시인 유진목 산문집

도시는 무엇이든 많은 것을 요구하는 곳이었다

도시는 무엇이든 많은 것을 요구하는 곳이었다. 가진 것을 다 주어야 도시에 겨우 있을 수 있었다. 도시에서 ‘나’는 오랫동안 비참하고 아무것도 아니었다. 엄마는 떠나버린 아빠 대신 자신과 ‘나’를 동시에 괴롭혔고, ‘나’는 엄마를 견디려고 나를 괴롭히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태어난 것이 싫었다.
나를 태어나게 한 것은 부모였다.
나는 부모가 싫었다. (38쪽)

그러다 부모와 떨어지기 위해 혼자가 되고, 부모를 만나지 않기 위해 다시 혼자가 되는 삶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내’가 처음으로 잘한 일이 있다면 가족을 떠난 것이다. 그다음 잘한 일이 있다면 가족에게 주소지를 알리지 않은 것이다. 세상에는 안전한 삶을 찾아 가족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왜 깨어났을까

죽음은 잠과 같았다. ‘나’를 괴롭히는 “벌레 같은 인간”들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나’는 “차마 눈을 뜨고 살 수 없어 종일 잠만 잤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는 내 것이 아닌 팬티를 입고 소변줄을 끼우고 있었다. 나는 왜 깨어났을까. 그때 가장 먼저 한 생각이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이 생각은 태어났을 때는 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간단히 죽는구나 생각하고서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을 때는 생각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죽음은 잠과 다를 바 없었다. (61쪽)

하루는 신이 나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고 싶어요?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요. 거기가 어딘데요? 내가 없는 곳이에요.

끝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

죽음이 끝이고 삶이 시작이라면, 이 책은 끝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죽음은 기억할 것들의 끝이었고, 흘러가는 것들의 멈춤이었고, 더 이상 싫어할 수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이제 다시 기억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은 이전에는 “알지 못하는 처음”이다.

내게 시작된 것은 옮겨 다니는 집들, 나를 멀리하는 아이, 팔꿈치로 방바닥을 기어 다니던 뒷집 오라비, 내 처음 친구 동이, 동이는 오라비의 동생, 대문 앞의 밤두꺼비, 손톱을 물들이던 호박의 꽃술, 논을 가로지르는 붉은 뱀, 단무지 공장에 빠져 죽은 아이, 버스 안에서 굴러가던 나의 도시락 가방, 그리고 다정한 엄마와 나를 때리는 엄마, 나를 웃게 하던 아빠와 여관방에 숨어 있던 아빠. (83쪽)

엄마와 아빠, 그리고 절대로 아빠를 다시 만나지 않겠다고 하는 오빠에게 편지를 쓴다. 부모가 정말 싫지만, ‘내’가 태어나서 본 것들을 생각하면 태어난 것이 좋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이 보고 싶진 않고, 그러나 그들을 마주할 마음의 준비를 하기 전에 그들이 먼저 죽을까 무섭다.
‘나’는 내가 아닌 모든 것이 되고 싶었지만, 그렇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서 매번 새로운 문신을 새기지만, 결국 “다른 것이 되지 못한 나는 나인 채로 살고 있다”. 병원 옥상에서 ‘웰빙’과 ‘힐링’을 기원하는 “휘게 체조”를 가르쳐주고, 죽을 거면 시집을 내고 죽으라는, 유리 통창 너머로 손을 크게 흔들어주는 다정한 친구들 덕분에, 그리고 한번 시작된 사랑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지금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해서 ‘나’는 병원에 있는 동안 내가 가진 최상의 집중력을 사용하여 시집 교정지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삶을 너무 사랑하더라도 무서워 말자”고 다독이며 밖으로 나갈 준비를 마친다.

지난날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마워. (169쪽)